마왕을시작하는법

마왕을 시작하는법프롤로그 상

유사코즈에 2020. 2. 2. 00:09

깊고 어두운 햇살 따위 들어오지않는 땅속에서 남자는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좁고 어두운 지하도에 어울리는 초라한 남자였다.

 

상당이 나이가 많은지 얼굴은 주름이 가려지지 않은 곳이 없고 등은 구부러져 있다.걸치고 있는것은 너덜너덜한 회색 밧줄이고, 그것조차 좁은 지하도의 먼지와 흙으로 범벅되어 그 비참한 양상을 한층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허리에 찬 등불도 꽤 오래된 것으로, 간신히 남자와 그 주위를 비추고 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고 팔에는 더이상 곡괭이를 휘두를 힘이 없다.

 

숨이 턱밑까지 차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남자는 피폐해져 있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지치고 닳은 그 남자는 눈만이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남자는 뭔가에 홀린 듯 열심히 곡괭이를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른다.

 

그리고 마침내.

 

갑자기 우지끈 소리가 나면서 벽의 일부가 무너졌다.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그 너머를 본다.

 

"후......하핫, 아하하하!"

 

그리고, 방금전까지와는 비교도되지않을 열정으로 곡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벽은 순식간에 그 균열을 더해가며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커진다.

 

사내는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홍소와 함께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하하하하! 됐다, 드디어 됐다! 이 맛조차 느껴질만큼 방대한 마력의 향기!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더듬어 보더니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억지로 뜯어냈다.거지보다 더 초라한 남자가 걸치고 있던 유일한 장식품에는 새끼손가락 끝 크기의 유리로 된 병이 붙어 있었다.

 

그 병을 남자는 지하도 끝에 있던 공동 한복판에 새워둔다.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천천히 병에 모여든다.그와 동시에 병 안에는 주황색 액체가 솟아났다.

 

"눈으로 볼수있을 정도의  고농도 마력의 결정체......! 훌륭해, 이것만 있으면!"

 

남자는 병을 땅에 내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반시진(1시간)정도 그랬을까.

 

길고 긴 주문은 서서히 열을 띠고 약하게 중얼거리듯 자아내던 그것은 어느새 낭랑하고 힘찬 목소리로 변하였다.

 

마지막에는 반쯤 외치듯이 주문은 끝을 고했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은 강한 빛에 휩싸였다.

 

"힘이 넘쳐흐른다......이게 젊은 육체란 말인가!"

 

빛이 사그라들자 안에는 젊고 씩씩한 청년이 서 있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주름진 노인의 모습은 한치도 없다.곧은 칼처럼 자란 장신에 단정한 얼굴 사지는 힘이 넘치고 피부는 비단처럼 매끄럽다.오직 하나, 강하게 빛나는 눈만이 원래의 노인과 같았다.

 

"이런, 벌써 다 찼나?"

 

병에 차오르던 액체는 벌써 병의 9할 정도를 채웠다.

 

남자가 젊어졌을 때 희미하게 그 양이 줄었지만 쌓이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남자가 주문을 외우며 팔을 흔들자,그 손가락 끝에서 주황색 마력이 흘러나와 병을 관통한다.

 

병은 눈앞에서 크게 부풀어올라,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이걸로 당분간은 버티겠지,자......"

 

남자는 짧게 주문을 중얼거리며 마법의 빛을 밝히고, 이어서 약간 긴 주문을 외웠다.남자의 손끝이 내리쬐는 빛을 받아 천연의 공동이었던 동굴은 순식간에 벽돌로 만든 살풍경한 지하실 탈바꿈한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깨물고 돌바닥에 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 쓴 마법진을 가볍게 쓰다듬고 마법진을 확인하자 남자는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젊어졌을 때보다 더 길고 복잡한 주문이다.

 

남자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쏫아져나오고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기가 떨리면서 방 밖에 놓여 있던 랜턴의 불길이 확 꺼졌다.

 

그때까지 정적을 유지하던 공간에 활시위를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난다.

 

불이 꺼진 공간을 지배하던 어둠이 마치 의지를 가진듯 꿈틀거리며 천천히 형체를 취하기 시작한다.

 

그 그림자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더욱 어둡고 또렷한 윤곽을 잡고......

 

그리고 방울소리 같은 소리를 냈다.

 

"...나를 부른 자는 당신?"

 

남자 앞에 나타난 것은 명색뿐인 옷을 두른 요염한 미녀였다.

 

윤기나는 긴 검은 머리는 흰 피부를 감싸듯 뻗어있다.

 

호리호리한 손발은 늘씬하게 뻗어있고, 그러나 나와야할 곳은 분명히 그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그럼, 불러준 답례로 특별한 꿈을 보여줄게.이 마법진을 지워주겠어? 이대로라면 그 멋진 입술에 키스할 수도 없잔아."

 

매달리듯이 연약하게 여자는 달콤한 목소리를 냈다.그것을 남자는 냉소한다.

 

"그럴 순 없군.그 마법진을 없애버리면, 너는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바로 나의 영혼을 빼앗아 마계로 돌아가겠지.마법진을 지우는 것은 계약을 하고 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