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시작하는법

마왕을시작하는법프롤로그 하

유사코즈에 2020. 2. 2. 15:06

남자가 그렇게 말한 순간 여자의 표정이 돌변한다.

 

연민을 자아내는 연약한 소녀에서, 넉살좋고 경험이 풍부한 창녀로.

"재미없게, 당연히 농담이잖아.이만한 마력을 마련할 수 있는 마술사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 없으니까."

 

여악마는 공중에 의자라도 있는 양 허공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운다.

 

의식하든 말든 그 동작은 선정적이고 요염하다.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야? 어리석은 남자들에게서 정수를 빨아줄까? 아니면 당신의 적에게 무한한 악몽을 보여줄까? 당신 자신에게 최고의 밤을 보여 주는 것도 좋지만"

 

"음, 너에게 던전제작을 맡기고싶군."

 

"하?"

 

남자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여악마는 보이지 않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음마주제에 색기없게 굴러떨어지지마라.그런 속옷 같은 차림으로 다리를 벌려 봤자 오히려 흥이 깨진다고나 할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 뭔가 던전을 만들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 그렇게 말했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가득 벌려 지하실을 빙 둘러본다.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깊고, 넓고, 흉악한 미궁을. 무수한 함정과 괴물들과, 보물이 기다리는 대미궁을. 지저세계로 이어지고있을거 같은, 터무니없는 던전을 만들어 주었으면 해."

 

여악마는 엉겁결에 머리를 눌렀다.병 따위와는 무관한 몸이다.

 

직접적인 타격 이외의 일로 두통을 겪는 일은 처음이었다.

 

"저기 말이야......백보 양보해서 그 던전의 경비로 소환된다면 아직 괞찮아.그런 조건으로 불려간적도 없지는 않고.하지만 던전을 만들라는 게 무슨 소리야!? 그런 건 고블린이나 골렘에게나 맡기라구!"

 

"물론 구멍 파는 작업은 그런 것들에 맡긴다.하지만 그 이외의 방대한 작업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던전의 통로나 방을 어떻게 배치하지? 덫과 괴물들은? 경비가 될 마물도 생물이라면 먹이가 필요하지.그 조달은 어떻게 하지? 우리의 미궁이 커지면 그것을 위협하려는 괘씸한 자도 나올 것이다.그러한 패거리에 대한 대처는? 생각해야 할 일, 해야 할 일은 무수히 많다.네게는 그일을 해줬으면한다."

 

 

"...그건 알겠는데 어째서 나야?"

 

겨우 자세를 고쳐 묻는 여악마에게 남자는 손가락을 세 개 내밀어 보인다.

 

"이유는 세 가지다.첫째로, 나는 인간을 믿지 않아.사람은 반드시 배신한다.요마나 아인의 종류도 마찬가지다.그에 반해 너희 악마는 틈만 나면 남을 타락시키려 하지만 계약을 어길 수는 없다.그래서 인간이 아니라 악마를 선택했다."

 

 "둘째, 통상 악마는 고위층일수록 강한 힘과 지혜를 갖지만 그만큼 계약과 유지에 대량의 마력이 필요하다.너희들 음마는 인간의 욕망에 민감해, 정기를 빨아들이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괴짜다.그리 강하지 않은 대신 필요한 마력에 비해 영리하고 인간 감정의 기미에도 밝다.그래서 음마를 골랐다.셋째로......"

 

남자는 거기서 말을 끊고, 여악마의 몸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곁에 둘거라면 눈요기가되는 아름답고 젊은 여자가 좋다.그래서 너를 선택했다."

 

여악마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남자를 본 뒤 쿡 웃었다.

 

"......과연 좋아 그 일 도와줄게"

 

"그럼, 이 계약에 이름을 대고 동의해줘"

 

남자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여악마에게 보여준다.여전히 어둠 속이지만 어둠의 권속인 악마에게 그런 일은 상관 있을 리 없다.

 

"계약 내용까지 준비했어? 준비성 좋네...근데 많아!? 도대체 몇 조항까지 있는 거야, 이거!"

 

마법진 너머로 제시된 양피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이 조항문이 적혀 있었다.

 

"말했잖아, 너희 악마는 틈만 있으면 인간을 타락시키려고 한다, 라고. 그것을 막기 위한 조문이다.극단적으로 너에게 불리하게 되는 불평등한 조문은 없으니까 안심해......라고 말해도 신용할수없을태니 마음껏 읽어."

 

"그렇게 안해도 배신하거나 하지 않는다니까......아 정말 글씨가 너무 가늘잖아......"

 

투덜투덜 불평을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조항문을 훑어본다.

 

"음, 일단은 좋아......이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알 같은 글씨라든가, 특수한 잉크로 보통은 보이지 않는 문자같은걸로 쓴 조항이 숨겨져있지니는 않겠지?있으면 계약 자체가 무효니까말이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여악마에게 남자는 심드렁하게 눈살을 찌푸린다.

 

"그쪽에게 불리한 내용은 없다고 했건만.의심 많은 녀석이군."

 

"네가 말하지 마! ...뭐 괜찮아. 그럼 계약할게"

 

"아, 그대, 서큐버스여.이 계약에 따라, 이름을 걸고 나의 힘이 되어주겠는가?"

 

이름은 마술사나 악마 같은 마와 관련된 이들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어느 정도 이상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저주를 내리고 그 영혼을 지배할수도 있다.

 

악마와의 계약은 그것을 이용한 것으로, 이름을 걸고 맺은 계약은 서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길 수 없다.

 

"내 이름 릴샤나에게 걸고 맹세한다.계약에 따라 당신에게 힘을 빌려주겠노라."

 

"그렇다면, 내 이름 아인 소프 오울에 걸고, 이 계약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선서의 말에 따라 계약서가 반짝인다.그리고 불길에 휩싸이자 한순간에 타버렸다.

 

계약 내용은 두 사람의 영혼에 새겨져 추기도, 수정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나를 오울이라고 불러라"

 

"네네. 난 릴로 좋아......잘 부탁해, 오울."

 

이상한 거랑 엮이게 된 것 같기도 한데

 

릴은 가까스로 그 말을 삼켰다.

 

마법진을 넘어 서로의 손이 잡힌다.

 

그렇게 두 사람의 미궁 만들기가 시작됐다.